여점의 유물
다양한 테마

전시실

高麗大學校博物館

전시실 야외전시

야외전시_ 野外展示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야외전시, 백년사전시실, 역사·민속전시실, 고미술전시실, 고고전시실, 현대미술전시실, 인촌기념전시실 7개의 테마별 상설전시실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우리 민족의 다양한 유물과 역사적 기록물 등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태항아리석함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왕자, 왕녀 등의 태(탯줄과 태반)를 항아리에 넣어 산 정상에 묻는 전통이 있었으며, 내항(속항아리)에 태를 담고 잘 싸서 이것을 다시 큰 외항(겉항아리)에 넣어 이를 태지석과 함께 큰 석함에 넣어 묻고 작은 태비를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석함은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177호 분청사기인화문태호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62cm 로 원통모양의 몸체와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체에는 길이 50cm의 홈을 판 후 밑바닥에 배수를 위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 구멍은 태의 주인공과 땅의 기원을 연결하려는 풍수적인 목적에서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연자방아
연자방아는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데 쓰는 도구로 연자매라고도 한다. 둥글고 판판한 큰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돌을 옆으로 세워 이를 소나 말이 끌도록 도안되었다. 아랫돌과 윗돌이 적당히 물리도록 조절한 뒤, 판 위에 찧고자 하는 곡식을 넣고 소나 말을 이용하여 둥근돌을 굴려 껍질을 벗겨낸다. 보통 한 사람이 소나 말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몰고, 다른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며 넉가래로 곡식을 뒤집어 곡식을 도정, 제분했다.
고인돌Ⅰ
고려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팀은 1986년 12월 1일부터 1987년 1월 6일까지 고인돌 16기가 군집되어 있던 보성강 유역 퇴적지를 발굴조사했다. 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계획의 일환으로 전라남도 순천시(옛 승주군) 송광면 오봉리 지역을 조사한 과정에서 붉은간토기, 간돌검, 돌화살촉, 삼각형 돌칼, 대팻날 등 다양한 유물을 출토했다. 고인돌의 형식은 전라남도 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남방식과 개석식으로 대변되며 기원전 3세기경에서 서력기원을 전후로 한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고인돌의 특이한 하부구조는 학술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고인돌 Ⅱ
이 고인돌은 주암댐 수목지역 문화유적발굴조사 계획의 일환으로 전남 보성군 문덕면 봉갑리, 보성강 유역의 돌출된 낮은 구릉의 밑단 부분에 14기가 군집 분포되어 있던 것을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87년 8월에 발굴조사 하였다.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이 올려져 있는 형식이다. 도화살촉 등이 출토되어 학술연구에 중요자료를 제공해주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된 이 고인돌들을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89년 10월 30일부터 이곳에 이전 전시하고 있다.
부도
조선초기의 부도로 높이는 1.85M 이다. 부도는 원래 고승의 사리 또는 유골을 안치한 묘탑이다. 이 부도는 기단부에 6각형의 대석에 연판문을 조각하여 장식하였고, 중앙 탑신부의 구형석은 상하면을 절단하여 둥글고 곱게 다듬어 안정감을 주었다. 옥개석은 기와지붕의 형상을 하였으며 상륜부는 연꽃 봉오리 형태로 연판문을 조각하였고, 정상부분에는 보주를 조각하였다. 원래 경북 울진군 소재 폐사지에 있던 것을 1988년 2월 16일 본교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오층석탑
이 탑은 고려중기의 탑으로 높이는 5.55M이다. 단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으로 구성된 석탑으로 재질은 화강암이다. 기단부의 하대석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대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로 제작되어 층단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의 낙수면 경사각이 완만하고 전각에서 약간의 반전을 보이고 있다. 2층 탑신과 기단부 면석 3매는 후대에 복원하였다. 원래 경기도 남양주군 외부면 원당국민학교에 소재했으나 1986년 10월 27일 본교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사사자석탑
네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받히고 있는 9층 석탑으로 현대에 조성된 것이다. 인촌기념관 뒤 야외정원에 위치하고 있다.
삼층석탑 Ⅰ
고려시대의 탑으로 높이는 3.37M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기단은 상, 하 2층 기단을 구비하고 있으며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아 고졸한 멋이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각 1매씩이며 탑신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옥개석 하면 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이,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대가 튀어나와 조각되어 있다. 3층 옥개석과 탑신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상륜부는 없어졌다.
삼층석탑 Ⅱ
높이 3.31M의 삼층석탑으로 고려 중기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나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이 보인다. 기단부의 하층기단은 1매로 4쪽으로 갈라져 있다. 하층기단 4면에는 물결무늬의 안상을 2개씩 내고 그 안에 보상화문을 하나씩 새겼다.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이 만나는 부분에는 연판문이 양각되어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각 1매씩이며 탑신에는 우주가 양쪽으로 모각되어 있으며, 옥개석 하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 모서리는 살짝 들어올려져 있어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일정한 비례로 축소되어 상승감과 동시에 안정감을 준다. 2,3층의 탑신과 옥개석 모서리 각각 3부분은 후대에 복원하였다. 원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모사리에 소재했으나 1962년 1월 5일 본교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문인석
문인석은 능묘를 수호하는 조각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공복 차림의 문관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문인석은 크고 두꺼워진 홀을 얼굴에 붙이고 있는 것과 공복의 소매가 2중을 하고 있는 점에서 15세기 것과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16세기 전반기의 문인석의 특징은 복두공복의 문인석이 계속 조성되고 있지만, 조각적 기법과 장식적 표현에 있어 이전시기보다 세련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문인석이 많이 등장한다. 16세기의 문인석은 양감이 풍부하며 코가 매우 돌출되어 있는데 반해 얼굴이 다소 평면화 되어 있고 사실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16세기보다는 17세기 작품들과 관계가 있다.

이밖에도 백주년기념관 뒷편에서 돌하르방, 동자상, 관솔대 등 다양한 야외 석조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